판다는 왜 잡식성인데 대나무만 먹을까?

고기 먹을 수 있는 치아를 가졌지만, 하루 종일 대나무만 우물우물?

에버랜드의 귀염둥이 푸바오를 보면 늘 대나무를 먹고 있는 모습이 익숙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 하나, 판다는 엄밀히 말하면 잡식성 동물입니다. 고기를 찢어 먹을 수 있는 송곳니를 가지고 있고, 육식 동물과 같은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는데 왜 굳이 영양가 낮은 대나무만 고집하는 걸까요?

사실 판다는 유전적으로는 곰과에 속하며, 초기 조상은 완전한 육식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대나무에 집착하는 동물이 되었죠. 이 변화에는 수천만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와 생태계에서의 생존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판다가 왜 대나무만 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학적 배경과 흥미로운 생물학적 이야기들을 풀어보려 합니다.

잡식성의 흔적: 판다의 이빨과 내장

우선 판다의 해부학적 구조를 살펴보면, 고기를 찢을 수 있는 송곳니(견치), 단단한 껍질을 부술 수 있는 어금니, 그리고 짧은 소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육식성 또는 잡식성의 흔적이 뚜렷합니다. 실제로 판다는 기회가 되면 고기나 알, 곤충 등을 섭취할 수 있는 생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판다가 서식했던 고지대에는 사냥 가능한 동물도 적고, 육식을 경쟁하는 동물(예: 호랑이, 표범 등)은 훨씬 강했기 때문에, 판다는 점차 자신만의 식생활 틈새를 찾아야 했죠.

 

대나무로의 전환, 생존을 위한 선택

약 700만 년 전, 판다의 조상은 차츰차츰 초식성 식단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당시 고산 지대에는 대나무가 무성했고, 다른 동물들이 거의 먹지 않던 이 식물을 독점적으로 섭취하면서 경쟁을 피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중요한 한계가 있습니다. 대나무는 에너지 밀도가 매우 낮은 식물로, 대량 섭취 없이는 생존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판다는 하루 10kg~20kg 이상의 대나무를 끊임없이 먹어야 하고,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식사에 쏟아붓습니다. 말하자면 '먹는 노동'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동물이 된 것이죠.

 

유전자의 딜레마: 육식성의 몸, 초식성의 식단

판다가 대나무를 선택했지만, 그들의 유전자 구조는 아직도 육식 동물에 가깝습니다. 판다는 육식을 하는 곰류와 유전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실제로 판다의 유전체 분석 결과, 단백질 분해 효소 관련 유전자는 있지만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는 소화 효소 유전자는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곧 판다가 대나무의 대부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다는 장내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최소한의 소화 효율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로 인해 하루 대부분을 먹는 데 써야 하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운동량도 극도로 제한되는 것이죠. 푸바오가 주로 누워 있거나 앉아서 대나무를 먹는 모습도 다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판다의 대나무 집착, 인간의 손에도 영향을 받았다?

흥미롭게도 판다가 완전한 대나무 식성으로 굳어지게 된 데에는 인간의 영향도 있습니다. 과거 서식지 파괴와 먹이 자원의 제한으로 인해 판다들은 고립된 지역에 머무르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식단의 다양성은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인공 사육 환경에서는 판다의 건강과 소화 시스템에 맞춰 엄선된 대나무만 제공되기 때문에, 더욱 대나무 중심의 식성이 강화되었습니다. 푸바오 역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 잡식성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실제 식단은 거의 100% 대나무입니다.

 

요약: 먹을 수 있지만, 선택하지 않은 고기

결국 판다는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생물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나무라는 낮은 경쟁의 식물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결과 지금의 식성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사랑스러운 푸바오가 하루 종일 대나무를 씹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귀여움에 빠지게 되었죠.

다음에 푸바오가 앉은 채 대나무를 베어무는 모습을 본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사실은 고기도 먹을 수 있는데, 일부러 안 먹는 중이야. 생존 전략이지!”